아이캔스피크 용기 있는 목소리가 만든 감동
아이캔스피크는 영어를 배우려는 까칠한 할머니와 9급 공무원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다. 코믹한 전개 속에 숨겨진 역사의 아픔과 용기가 깊은 울림을 준다.
아이캔스피크에서 발견한 세대를 넘은 진짜 우정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냥 할머니가 영어 배우는 코미디 영화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옥분 할머니와 민재 공무원의 첫 만남은 정말 최악이었다. 민원 마왕으로 불리는 옥분 할머니는 구청에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온갖 민원을 쏟아냈고, 원칙주의자 민재는 그런 할머니를 골칫거리로만 여겼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초반부에는 정말 웃겼다. 할머니의 뻔뻔함과 민재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절묘하게 대비되면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제안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로 이용하는 관계였다.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고, 민재는 민원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게 됐다. 민재는 까칠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할머니의 따뜻함을 발견했고, 할머니는 융통성 없어 보이던 민재의 성실함과 착한 마음을 알게 됐다. 나이 차이가 60년이 넘는데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서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 특히 민재가 할머니를 위해 밤새 영어 자료를 준비하고, 할머니가 민재의 승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들이 정말 따뜻하게 다가왔다. 세대 차이, 성격 차이를 뛰어넘는 진심이 느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웃음 뒤에 숨겨진 역사의 무게와 용기
영화 중반까지는 정말 유쾌한 코미디였다. 할머니가 영어 단어를 엉뚱하게 발음하거나, 민재와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이 계속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는지, 그 진짜 이유가 밝혀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옥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 끌려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거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할머니의 모든 행동이 다르게 보였다. 그토록 강하고 당당했던 이유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다. 70년 넘게 참아왔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이 일흔이 넘어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를 외우고, 문장을 만들고, 발음을 연습했다. 그 모습이 정말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실제 미국 의회 청문회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다.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I can speak라고 말하며 증언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그 한마디 속에 담긴 용기와 결단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침묵을 강요당했던 피해자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무거운 역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우울하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의 용기가 희망을 전해줬다. 아픈 과거를 직면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치유의 시작이라는 걸 조용히 보여줬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변화의 힘
아이캔스피크가 특별했던 건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옥분 할머니는 그냥 동네에 사는 평범한 노인이었고, 민재도 작은 구청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변화는 결코 작지 않았다. 민재는 처음엔 할머니를 귀찮은 존재로만 여겼다. 원칙대로 일 처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알아가면서 공무원의 진짜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게 단순히 서류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할머니 덕분에 민재는 더 나은 공무원이 됐고, 동시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할머니 역시 민재를 만나면서 변했다. 평생 혼자 모든 걸 감당해왔던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민재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면서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을, 함께였기에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민재처럼 귀찮다고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 다가가는 것, 옥분 할머니처럼 나이와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 결국 큰 변화를 만든다는 걸 영화는 보여줬다. 아이캔스피크는 단순한 감동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있는지,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묵직했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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