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웃음 뒤에 숨은 진짜 감동
형은 처음엔 그냥 웃고 넘기려고 틀었던 영화였다. 근데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흐릿해지고 있었고, 다 보고 나서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조정석과 도경수가 만들어낸 두 형제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가족이라는 게 뭔지, 형제라는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를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낸 영화. 억지로 눈물 짜내는 영화가 지겨웠다면, 형은 분명히 다르게 느껴질 거다.
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솔직히 처음에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별거 없었다. 조정석이 나온다고 해서, 그냥 가볍게 웃고 싶어서 켰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30분도 채 안 돼서 표정이 바뀌고 있었다. 단순한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조금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는 전직 격투기 선수였다가 지금은 완전히 망해버린 두식(조정석)이 갑자기 나타난 남동생 고준(도경수)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어릴 때 헤어진 사이라 서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형이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동생이라고 살갑게 대하기도 어색한 그 거리감이 영화 초반 내내 유지된다. 근데 이 어색함이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오랫동안 연락 못 하고 지낸 친척을 어쩌다 만났을 때 딱 저런 느낌이었거든. 뭘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그 묘한 불편함. 괜히 말 한마디 꺼냈다가 더 어색해질까 봐 웃기지도 않은 농담만 던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두 형제의 관계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두식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 보면 그냥 허세 많고 입만 살아있는 형처럼 보인다. 근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이 다친 사람이다.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그게 무너진 다음에도 아직 그 시절에서 못 빠져나온 사람. 뭔가 안타까운데 웃기고, 웃긴데 또 안타깝다. 조정석이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이 정말 자연스러워서 인위적으로 감동을 만들어내려는 느낌이 거의 없다. 그냥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형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에 가족과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소하게 다투고 몇 달 동안 연락 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이야기하던 순간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장면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형 두식의 행동이 말보다 더 많은 걸 설명했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건 대사보다 행동이었다. 두식은 말로 "동생 챙겨야지"라든가 "미안해" 같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근데 행동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고준을 신경 쓰고 있는지가 다 보인다. 티 안 나게 뭔가를 해주고, 들키면 괜히 딴소리로 넘어가는 그 방식이 굉장히 한국 사람스럽다고 느꼈다. 직접적으로 표현 못 하는데 마음은 있는 그런 사람들. 주변에 꼭 한 명씩은 있는 유형이잖아. 나 역시 예전에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해서 괜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던 적이 있다. 밥을 한 번 더 사주거나 필요할 것 같은 걸 미리 챙겨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두식의 행동들이 괜히 더 마음에 와닿았다. 도경수가 연기한 고준도 처음엔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이 솔직히 없진 않았다. 근데 보다 보니 그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준은 시각장애를 가진 인물인데 도경수가 그 부분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연기한 게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불쌍해 보이려고 애쓰는 연기가 아니라 그냥 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누구나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불행하게만 살아가는 건 아니다. 영화가 그 부분을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준 점이 좋았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느 순간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억지스럽지 않게 흘러간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같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함께 밥 먹고 사소한 일들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있는 관계다
가족 영화 형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런 여운이 남는 영화가 요즘엔 많지 않다고 느꼈다.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인 것 같다. 결국 형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하다. 가족, 특히 형제라는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피를 나눴다고 자동으로 가까워지는 건 아니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만들어지는 관계라는 것. 영화를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가족 생각이 났다. 실제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오랜만에 형제에게 연락을 했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어떤 영화는 보고 나면 줄거리만 기억나지만 어떤 영화는 보고 난 뒤 내 행동을 조금 바꾸기도 한다. 형이라는 영화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추천 대상을 굳이 꼽자면 가족과 조금 멀어진 느낌이 드는 사람, 요즘 감정이 무뎌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억지로 울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이 떠오르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이다. 형, 생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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