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샘 아빠의 사랑에 학력이 필요할까
아이 엠 샘은 지능이 아닌 사랑으로 딸을 지킨 아버지의 이야기다. 감독 제시 넬슨, 주연 숀 펜·다코타 패닝·미쉘 파이퍼의 2001년 작품으로, 보고 나면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아이 엠 샘을 보고 처음 든 생각 이 아빠, 정말 자격이 없는 걸까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다. 주인공 샘 도슨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고, 딸 루시를 혼자 키우고 있다. 첫 장면부터 샘이 밥을 차리고, 루시의 가방을 챙기고, 등교를 준비시키는 모습이 나오는데 보는 내내 "저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 의문이 드는 순간, 나는 이미 사회가 내게 심어놓은 기준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능력이 있어야 부모 자격이 있다는, 그 무의식적인 잣대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잣대를 아주 천천히 조용히 무너뜨린다. 샘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매일 같은 팬케이크를 만들고, 매일 밤 루시에게 비틀즈 노래를 불러준다. 그 반복이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루시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건 완벽함이 아니라 한결같음이었다. 샘은 어떤 날도 루시 곁을 빠지지 않았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박힌 장면이었다. 딸과 아빠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말보다 행동으로 나온다. 루시는 자기가 아빠보다 글을 더 잘 읽게 됐을 때, 일부러 틀리게 읽는다. 아빠가 상처받을까봐. 일곱 살짜리 아이가 부모를 배려하는 그 장면에서 나는 멈칫했다. 이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은 그냥 사랑이 아니었다.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그 감정이 화면 밖으로 전해져서, 보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법정이 묻고 영화가 답한다 아이 엠 샘이 꺼낸 불편한 질문
영화 중반부터 법정 장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동보호국이 루시를 샘으로부터 분리하려 하고, 샘은 변호사 리타(미쉘 파이퍼 분)의 도움을 받아 딸을 되찾으려 싸운다. 이 과정이 단순한 법정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국가와 사회가 "좋은 부모"를 판단하는 기준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법정에서 상대편 변호사는 샘의 지능지수를 들이밀며 그가 루시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그 "그럴싸함" 뒤에 숨어 있는 냉혹함을 파고든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학력 높고 경제력 있는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감정적으로 외면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영화는 그 불편한 현실을 법정 언어로 끄집어낸다. 리타 변호사의 역할도 흥미롭다. 그녀는 처음에 샘의 사건을 거의 봉사처럼 받아들인다. 그런데 샘과 루시의 관계를 가까이서 보면서 스스로 돌아보기 시작한다. 정작 자기 아들과는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리타가 샘에게 배운다는 구도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완벽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핍된 두 사람이 서로를 채워주는 이야기다. 그 구도가 영화를 단순한 신파에서 꺼내준다. 법정 장면 중 샘이 판사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 말이 꼬이고, 논리도 엉키고, 제대로 된 문장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말 안에 담긴 간절함은 그 어떤 유창한 변론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딸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확실하다는 것 그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딸이 아빠를 선택하는 이유 아이 엠 샘이 끝까지 놓지 않은 것
영화 후반부에 루시는 위탁 가정에서 지내게 된다. 위탁 어머니는 따뜻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다. 루시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런데 루시는 자꾸 샘에게로 달려간다. 밤에 몰래 빠져나와 아빠를 찾아가고, 아빠 없이는 잠을 못 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었다. 아이는 조건을 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부모는 세계 그 자체다. 루시에게 샘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었다. 그 감각은 집의 크기나 부모의 학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밤 노래를 불러주고, 넘어졌을 때 달려와주고, 자기 이름을 가장 먼저 불러준 사람 그게 샘이었다. 루시가 아빠를 선택하는 건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아이의 가장 본능적인 신뢰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화려한 법정 장면도, 눈물 나는 결말도 아니었다. 샘이 루시를 재워놓고 혼자 앉아서 비틀즈 음악을 듣는 장면이었다.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사건도 없는 그 장면. 그냥 아빠가 딸 곁에 있다는 것 하나로 가득 찬 그 화면이,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사랑은 증명하는 게 아니라 매일 곁에 있는 것이라는 걸, 샘은 말 대신 삶으로 보여줬다. 아이 엠 샘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완벽함이라는 기준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보고 나서 한동안 주변 사람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내가 어떤 기준을 들이밀고 있었는지, 그 기준이 정말 옳은 건지. 그런 질문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좋은 영화는 이렇게 일상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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