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평범한 여성들의 조용한 반격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2020년 개봉한 한국 영화로, 최국희 감독이 연출했다. 이지원 역의 고아성, 자영 역의 이솜, 유나 역의 박혜수가 주연을 맡았으며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다. 1990년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대기업 여성 직원들이 회사의 환경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솔직히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가볍고 유쾌한 직장 코미디 정도라고 생각했다. 토익반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친숙함 때문이었는지, 큰 기대 없이 틀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를 고쳐 앉게 됐다. 1990년대 배경의 대기업 사무실, 파마머리에 어깨뽕 가득한 재킷,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찼는데 그게 단순한 시대극 연출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영화를 본 건 2022년 가을이었다. 그때 나도 직장 생활에 지쳐 있던 시기였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무력감, 나보다 덜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사람이 더 좋은 위치에 있다는 느낌. 그런 감정이 쌓여 있던 때 이 영화를 봤다. 그래서인지 세 주인공이 답답한 현실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영화의 배경은 1995년이다. 삼진그룹이라는 대기업에 다니는 고졸 출신 여성 직원 세 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승진을 위해 사내 영어토익반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하는데, 그러다 우연히 회사가 공장 폐수를 인근 하천에 몰래 방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순한 폭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더 넓은 이야기다. 학벌, 성별, 직급이라는 여러 겹의 벽 앞에서도 옳은 일을 하려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보여준 것, 용기는 직급 순서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세 주인공이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뭔가를 바꾸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냥 월급 받고 묵묵히 일하고, 승진하고 싶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사실 앞에서 모른 척하지 못했다. 그 모른 척 못하는 마음이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특히 고아성이 연기한 이지원 캐릭터가 기억에 남았다. 야무지고 눈치 빠르지만 그렇다고 냉정하지 않다. 뭔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 혼자 삭히지 않고 친구들한테 털어놓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움직인다. 그 팀워크가 영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였다. 이솜이 연기한 자영은 겉보기엔 가장 털털하고 분위기 메이커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을 가진 인물이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에 찍힐 수도 있는 일을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걸 그 캐릭터가 잘 보여줬다. 박혜수가 맡은 유나도 마찬가지다. 가장 조심스럽고 소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조직 안에서 옳은 말을 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거다. 틀린 걸 알아도 분위기상 말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게 비겁한 게 아니라 그냥 현실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씁쓸하다. 이 영화 속 세 사람이 그 현실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걸 보면서 작게나마 자극을 받았다. 1995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지금보다 훨씬 수직적인 조직 문화, 여성 직원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 환경 문제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 공감했겠지만, 지금 세대가 봐도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많았다. 구조가 바뀌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다 보고 나서 오래 남은 것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기분이 묘했다. 통쾌하기도 했고, 동시에 뭔가 무겁기도 했다. 결말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마냥 가볍게 끝난 느낌이 아니었다. 그건 아마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이 영화의 모티프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영화가 다르게 보였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 사건을 잘 몰랐다. 영화를 보고 나서 따로 찾아보게 됐는데, 그게 이 영화가 가진 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재미있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보고 나서 뭔가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틀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여성 서사가 중심이고 그 부분이 영화의 큰 매력이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성별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불합리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두려움이 있어도 옳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그 질문은 보편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생각났다. 말 못하고 참고 있는 일들이 있지는 않을까, 나는 주변 사람들한테 좋은 동료가 되고 있는 걸까. 영화 한 편이 그런 생각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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