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포기하지 않고 반복한 선택이 만든 변화
기적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영화
기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하늘이 갈라지거나, 불가능한 일이 한 순간에 해결되거나,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고, 꾸준히 믿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딱히 기대를 갖고 선택한 게 아니었다. 2022년 초, 뭔가 따뜻한 걸 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찾다가 제목에 끌려 클릭했다. 그때 나는 꽤 무기력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도 결과가 잘 안 나오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쌓여 있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이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88년 경북 봉화군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작은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준경이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서를 혼자 작성해 철도청에 제출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한 고등학생이 철도청에 청원서를 낸다고 뭔가가 바뀌겠냐고. 근데 이게 실화라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박정민의 연기가 특히 좋았다. 진지하지만 과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느낌. 준경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사보다 표정과 눈빛으로 전달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다. 임윤아가 맡은 라희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밝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 묘한 쓸쓸함이 있는 캐릭터인데, 그 균형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후반 농촌 마을의 풍경도 눈에 담겼다. 요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그 시대의 질감이 화면 곳곳에 살아 있었고, 그게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해줬다.
기적을 기다리지 않고 만들려 한 소년의 이야기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준경이 청원서를 처음 작성하는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몇 번의 거절 이후에도 다시 청원서를 수정하고, 더 많은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장면들이었다. 한 번 거절당하면 포기하기 쉽다. 두 번 거절당하면 더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근데 준경은 그러지 않았다. 거절이 쌓일수록 더 꼼꼼하게 다시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한 번 거절당했을 때 얼마나 빨리 포기했던가. 어릴 때부터 뭔가를 해보려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맞나 보다 하고 물러섰던 일들이 생각났다. 준경은 그게 틀렸다는 걸 자기 방식으로 보여줬다. 안 된다고 하면 왜 안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걸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는 것. 단순하지만 실제로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층위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다. 처음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준경의 청원 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한 아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과정도 영화는 잘 담아냈다. 변화는 갑자기 오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바꾸면서 일어난다는 것. 실화라는 배경이 이 영화의 무게를 다르게 만든다. 만약 이게 완전한 창작이었다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결말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알고 보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진짜 그 마을에 기차역이 생겼고, 진짜 그 청원서가 시작점이 됐다는 사실. 그게 이 영화 전체를 받쳐주는 힘이다. 이장훈 감독은 이 이야기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풀어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는 연출이 없다. 그냥 이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조용히 따라가는 방식인데, 그 담백함이 오히려 감정을 더 깊이 건드렸다.
기적이 끝나고 나서 내가 달라진 것 하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통쾌한 결말이 아니었는데도, 그리고 화려한 장면 하나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좋은 영화를 봤을 때만 느껴지는 그 감각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작은 시도를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하게 됐다는 거다. 어차피 안 될 것 같다고 미리 포기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꺼내보게 됐다. 준경이 했던 것처럼 거창하게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그 마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겼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보통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근데 이 영화는 기적이 어쩌면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래 믿고, 조금씩 움직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응답이 온다는 것. 그 메시지가 과장 없이 전달됐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보길 권하고 싶다. 지쳐 있는 시기에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억지로 힘을 내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조용히 옆에 앉아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니까. 그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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