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세상에서 가장 말 안 듣는 개가 가르쳐준 것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뭔가 익숙한 감정이 올라올 거다. 작고 통통한 강아지가 집 안을 뛰어다니고, 가구를 물어뜯고, 온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그 장면. 나도 처음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딱 저랬다 싶어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영화가 끝날 즈음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말리와 나는 2008년에 개봉한 영화로, 실제로 존재했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말리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작품이다.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은 이 영화를 단순한 동물 영화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리라는 존재를 통해 한 가정이 어떻게 성장하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 선택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말리와 나가 보여주는 진짜 반려견의 삶 미화 없이 그대로
많은 동물 영화들이 반려동물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귀엽게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말리와 나는 달랐다. 말리는 훈련이 전혀 안 되고, 물건을 닥치는 대로 씹어 먹고, 산책 중에는 주인을 끌고 다니는 그야말로 현실 그 자체의 개였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속으로 "저게 진짜 강아지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연속이다. 내가 처음 강아지를 입양했을 때, 첫 주에 이미 슬리퍼 두 짝과 리모컨 하나를 잃었다. 그때는 화가 많이 났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오히려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추억이 됐다. 말리와 나는 그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귀찮고 힘들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생기는 그 역설적인 감정 말이다. 영화 속 존 그로간 부부는 말리를 키우면서 수없이 지쳐 쓰러진다. 개 훈련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이웃에게 민원을 받고, 집 안을 수십 번 정리하면서도 결국 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영화 내내 딱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솔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그게 바로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아닐까.
반려동물 관련 전문가들은 반려견이 가족 구성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특히 스트레스 완화, 외로움 감소, 일상의 리듬 형성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말리와 나는 그 학술적 이야기를 데이터가 아닌 이야기로 풀어낸다. 말리가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집 안 분위기 차이, 그게 이 영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말리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영화가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활발하게 뛰던 말리가 점점 느려지고,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하고, 예전처럼 반응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조용히 쌓여간다. 그 변화가 너무 자연스럽게 묘사돼서 오히려 더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영화 속 존 그로간 가족 이야기 말리와 나, 함께 성장한 시간
이 영화가 단순한 개 영화가 아닌 이유는, 말리의 이야기와 동시에 그로간 가족의 성장 서사가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다. 존과 제니는 말리를 데려오는 시점에 막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그들은 아이를 갖기 전에 책임감을 연습하려는 마음으로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 설정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결혼 초기에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기 시작하는 커플이 꽤 많다. 함께 무언가를 돌보는 경험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친구 커플이 강아지를 입양한 뒤로 싸움이 줄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꼭 웃긴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존 그로간은 영화 속에서 신문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말리에 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그 칼럼이 독자들에게 큰 반응을 얻으면서 그는 자신의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게 된다.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말리가 그의 글쓰기에 영감을 준 셈이니까. 반려동물이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이자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세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커지면서 말리의 역할도 조금씩 변해간다. 아이들에게 말리는 형제와도 같은 존재가 되고, 아이들이 우는 날이면 말리가 곁에 와서 핥아주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그 장면들은 대사 하나 없이도 충분히 따뜻하다. 감독이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오웬 윌슨은 이 영화에서 평소의 코믹한 이미지보다 훨씬 내면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말리가 아파가는 장면에서 그가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대사 없이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니퍼 애니스톤 역시 육아와 일 사이에서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두 배우의 조합이 이 가족 이야기를 더 진실하게 만들었다.
말리와 나가 남긴 이별 장면 슬픔이 아닌 감사로 기억되는 이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솔직히 울었다. 예고는 있었다. 말리가 점점 늙어가고, 밥도 잘 못 먹고, 눈도 흐릿해지는 장면들이 이미 충분히 그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마음이 먹먹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말리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으로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존은 말리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차 안에서 말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넌 정말 좋은 개였다고. 세상에서 가장 말 안 듣는 개였지만, 정말 좋은 개였다고. 그 대사가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고를 쳐도, 힘들게 해도 그 존재 자체가 소중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거다. 반려동물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자신의 경험이 겹쳐 보일 거다. 나 역시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를 떠나보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집 안이 갑자기 너무 조용하게 느껴졌던 그 날. 말리와 나는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도 전달한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 동물 심리학 분야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충격이 사람을 잃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슬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 슬픔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말리와 나는 그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영화이기도 했다. 강아지 한 마리를 잃은 슬픔이 충분히 슬플 수 있다고, 영화 전체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내 주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그들이 매일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병원을 데려가는 그 일상이 사실은 작은 헌신의 연속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말리와 나는 단순히 귀여운 강아지 영화가 아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돌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용하고 따뜻하게 짚어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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