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걸 11살 여름이 가르쳐준 것들
제목만 보면 로맨틱한 영화 같다. 마이 걸.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제목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여름 내내 함께 다니던 소년에 대한 소녀의 기억, 그 소년을 잃은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소녀의 이야기.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가볍게 시작해서 아주 무겁게 끝나는 영화가 있는데, 마이 걸이 그랬다.
마이 걸이 1972년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 시대가 베이다의 감정을 더 외롭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2년 여름 미국 펜실베이니아 매디슨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전 이야기다. 그 시대를 굳이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72년은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지금과 꽤 달랐던 시기였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슬픔이나 두려움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고, 베이다의 아버지 해리 역시 그런 어른이었다.
베이다는 태어날 때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 해리는 그 이후로 감정적으로 닫힌 사람이 됐다. 장의사라는 직업도 베이다의 삶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집 안에 항상 시신이 드나들고, 죽음이 일상의 일부인 환경. 그런 곳에서 자란 베이다가 죽음에 집착하고 건강 염려증을 갖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아버지는 베이다의 그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할머니는 치매가 있어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 외로움 속에서 베이다에게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존재가 토마스였다. 온갖 것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역시 또래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년. 둘 다 어딘가 겉도는 아이들이어서 서로를 알아봤다. 그 관계가 영화 전반부를 따뜻하게 만드는 핵심이었다.
1972년이라는 시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닉슨이 대통령이던 시절, 베트남전이 끝나가던 시절, 히피 문화가 물러가고 있던 시절. 영화 결말에 베이다의 독백으로 공화당이 닉슨을 지명했다는 뉴스가 언급된다. 그 한 줄이 영화가 개인의 성장 이야기를 역사적 순간과 연결시키는 방식이었다. 베이다의 여름이 끝날 때 그 시대의 한 챕터도 함께 끝나고 있었다.
영화 전반부에 베이다가 목에 닭뼈가 걸렸다며 아버지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해리는 냉장고에서 마요네즈 꺼내달라며 무심하게 대한다. 그 짧은 장면 하나에 베이다와 아버지의 관계 전부가 담겨 있었다.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어른, 그래서 더 이상한 방식으로 관심을 구하는 아이. 이 관계가 영화 내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였다.
맥컬리 컬킨이 토마스를 연기한 것의 의미 마이 걸에서 발견되는 역발상 캐스팅
마이 걸이 개봉한 1991년, 맥컬리 컬킨은 나 홀로 집에로 이미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상태였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꾀 많고 영리하게 어른들과 맞서는 아이. 그런데 마이 걸에서의 토마스는 그 이미지와 완전히 반대였다. 수줍고 어리숙하고, 알레르기가 많아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베이다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그래도 나도 있잖아'라고 소박하게 말하는 아이.
그 반전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실제로 보면 토마스라는 캐릭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맥컬리 컬킨이 그 역할을 과장하지 않고 아주 조용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 홀로 집에의 케빈과 마이 걸의 토마스 사이에는 같은 배우의 연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토마스라는 캐릭터를 더 실제처럼 만들었다.
토마스의 존재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베이다에게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연결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베이다는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았는데, 정작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벌에 쏘여 알레르기 반응으로 세상을 떠난 토마스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베이다가 결과를 통보받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그 방식이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다.
토마스의 장례식 장면에서 베이다가 관 앞에 서서 "안경을 가져다줘야 해, 안경 없이는 아무것도 못 봐"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다. 어른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과 아이들이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그 한 장면이 보여줬다. 베이다는 토마스가 안경이 없으면 불편할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맥컬리 컬킨은 이 영화 이후 출연작이 줄면서 아역 스타로서의 시기를 마감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마이 걸에서의 토마스가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조용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연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 걸이 성장 영화로 오래 기억되는 이유 상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성장 영화는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오래 남는 영화들은 주인공이 무언가를 얻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이 걸도 그랬다. 베이다는 이 여름을 통해 친구를 잃고, 그 상실을 겪으면서 비로소 아버지와 조금 가까워지고, 죽음과 함께 살아온 집안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성장이 항상 무언가를 더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줬다.
베이다가 토마스를 잃은 뒤 버드나무 아래서 혼자 슬픔을 터뜨리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시 낭송 수업에서 토마스를 추모하는 시를 읽는 장면. 그 두 장면이 베이다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준다. 슬픔을 혼자 감당하던 아이가 결국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게 됐다는 것. 시를 쓰고 낭송한다는 행위가 단순한 수업 과제가 아니라 베이다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찾은 것이었다.
이 영화가 전 세계 1억 2천만 달러를 넘게 벌어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고, 그 상실이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30년이 넘은 영화를 지금 다시 보아도 베이다의 감정이 낡은 느낌 없이 전달되는 건 그 보편성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보면 베이다의 이야기뿐 아니라 해리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보인다. 딸이 소녀로 성장하는 걸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그 남자의 공허함이, 이 여름을 통해 조금 채워지는 과정이 영화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템테이션스의 'My Girl'이 엔딩 크레딧에 흐를 때 이 영화가 왜 그 제목을 선택했는지 비로소 이해된다. 노래가 말하는 'My Girl'은 베이다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본 사람 각자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여름, 그 시절의 친구, 그 시절에 처음 맛본 슬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건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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