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천재보다 어려운건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은 구스 반 산트 감독, 맷 데이먼·로빈 윌리엄스·벤 애플렉 주연의 미국 드라마 영화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직접 각본을 써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수학 천재이지만 상처로 닫혀있는 청년 윌과 상담사 숀의 관계를 통해 신뢰와 치유의 의미를 묵직하게 풀어낸 걸작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어느 늦은 밤이었다. 제목도 잘 모르고, 그냥 채널을 돌리다 맷 데이먼이 나왔기에 멈췄다. 중간부터 봤는데 뭔가 대화 장면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화려한 액션도 없고 빠른 전개도 없는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굿 윌 헌팅이라는 제목을 알게 됐고,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게 얼마나 정교한지 느꼈다. 천재 청년의 이야기인데, 정작 영화가 집중하는 건 그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굿 윌 헌팅이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각본으로 시작된 이유 이 영화가 진짜인 이유
굿 윌 헌팅의 각본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직접 썼다. 두 사람이 보스턴 출신의 20대 청년 배우였던 시절, 아직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쓴 각본이었다. 당시 맷 데이먼은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그 경험과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감각이 이 영화 전반에 스며 있다. 두 사람은 이 각본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그게 두 배우의 커리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각본이 두 사람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윌 헌팅이라는 캐릭터는 하버드 캠퍼스 청소부로 일하면서 교수들도 못 푸는 수학 문제를 복도 칠판에 풀어놓는 인물이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는 법을 모르고, 오히려 그 능력을 숨기며 사는 사람. 이 설정이 보스턴 노동자 계층 출신 청년들이 느끼는 감각과 정확히 맞아 있다는 걸, 두 사람이 직접 그 동네 출신이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각본을 처음 영화사들에 내밀었을 때 거절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각본을 결국 선택한 건 구스 반 산트 감독이었다. 구스 반 산트는 두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그대로 담으면 된다"는 방향을 잡아줬고,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고 인물과 대화에 집중하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 그 선택이 이 영화를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작품으로 만든 기반이 됐다.
제작비는 1천만 달러 수준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였는데, 전 세계에서 2억 2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그 성과가 단순히 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엄스라는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본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던 동네, 자신이 느끼던 감각,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들을 담은 이야기는 세공된 공식 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와 다른 결을 가진다. 그 차이가 관객에게 전달됐다.
이 각본이 처음에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됐다. 나중에 걸작으로 남은 작품이 처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당장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 굿 윌 헌팅이 그 증거였다.
로빈 윌리엄스가 숀을 연기한 방식 조언이 아닌 경청이 치유가 되는 순간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상담사 숀 맥과이어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숀 역시 아내를 잃고 오랫동안 슬픔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를 직접 다루지 않으면서 윌이라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다루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위치. 그 복잡성이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를 통해 화면에 살아났다.
로빈 윌리엄스 하면 많은 사람이 코미디를 떠올린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알라딘의 지니, 잭. 그런데 굿 윌 헌팅에서의 로빈 윌리엄스는 그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공원 벤치에서 윌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는 장면, 세션 중에 윌이 방어적으로 공격해도 흔들리지 않는 장면. 그 절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들을 만들었다.
특히 숀이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처음엔 윌이 그 말을 방어하고 비웃는다. 그런데 숀이 계속 반복하면서 윌의 방어가 무너지는 그 순간,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전부 전달됐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탓해온 사람이 처음으로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그게 왜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장면은 인지 재구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믿음을 다른 관점으로 바꾸는 과정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한다. 숀이 반복해서 그 말을 건네는 방식이 바로 그 과정을 보여줬다. 영화가 심리치료의 본질을 이렇게 정확하게 담아낸 경우는 드물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 수상 소감에서 그는 구스 반 산트 감독과 맷 데이먼, 벤 애플렉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이 역할이 내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코미디 배우로 주로 알려졌던 자신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됐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이 영화의 숀이라는 캐릭터와 겹쳐 보였다. 치유하는 사람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윌 헌팅이 결국 선택한 것 굿 윌 헌팅이 남기는 질문
영화 내내 윌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MIT 교수 람보는 윌의 수학적 재능을 학계에서 발휘하길 원하고, 정부 기관은 그 능력을 정보 분석에 쓰려 한다. 절친한 친구 처키(벤 애플렉)는 윌이 이 동네에서 평생 살기엔 너무 뛰어난 사람이라며 떠나길 바란다. 그리고 숀은 윌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 처키의 대사였다. 매일 아침 윌의 집에 들를 때마다 혹시 오늘은 윌이 없어져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장면. 그게 진짜 친구의 마음이라고 했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친구가 나 때문에 여기 있는 것보다, 내가 없더라도 더 좋은 곳에 가 있는 게 낫다는 것. 그 마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진한 우정의 표현이었다.
윌이 결국 선택한 건 스카일라라는 연인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것이었다. 수학 천재로서의 커리어도, 정부 기관도 아닌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가는 선택. 그 결말이 처음엔 싱거워 보일 수 있는데, 사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이었다.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것, 능력보다 관계가 먼저라는 것. 그걸 선택하기까지 윌에게 숀이 필요했다.
굿 윌 헌팅은 개봉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두려움이나 상처 때문일 수 있다는 이야기. 능력을 개발하는 것보다 그 능력을 막고 있는 내면의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것. 그 메시지가 지금도 유효한 건 이 문제를 가진 사람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굿 윌 헌팅을 보고 나서 한동안 스스로에게 숀이 윌에게 했던 질문을 해봤다. 넌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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