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우주보다 넓은게 있다면 그건 시간이었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매튜 맥커너히·앤 해서웨이·제시카 차스테인 주연의 미국 SF 드라마 영화다. 지구 멸망 위기 속 인류를 구하기 위해 웜홀을 통해 우주로 떠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상대성 이론·4차원·중력 등 실제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구성된 하드SF의 걸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하늘을 올려다보는 감각이 달라졌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 밤,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뭔가를 느꼈는데 그게 뭔지 정리가 안 됐다. 슬픈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닌데, 뭔가 가슴이 꽉 찬 느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여운이 남아 있었고, 결국 일주일 뒤에 다시 봤다. 두 번째 관람에서야 처음에 몰랐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터스텔라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다.


인터스텔라 포스터


인터스텔라가 과학을 영화 언어로 번역한 방식 킵 손 박사와 놀란의 협업

인터스텔라는 그냥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과학적 기반을 만든 사람이 물리학자 킵 손이었다. 놀란 감독의 제작진과 함께 블랙홀, 웜홀, 상대성 이론을 영화 속에 어떻게 구현할지를 수십 차례 논의했고, 그 결과물이 가르강튀아라는 블랙홀의 시각화였다. 이 블랙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실제 물리학 방정식을 렌더링 소프트웨어에 적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블랙홀 주변 빛의 굴절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발견이 나왔고 이것이 실제 과학 논문으로 발표됐다.

영화가 과학 논문 발표로 이어진다는 건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가르강튀아 장면을 다시 봤는데, 단순히 화려한 CG가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만들려 한 결과라는 게 느껴졌다. 그 블랙홀을 바라보는 장면이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니라 실제 우주의 일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을 주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시간 지연 효과도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설정이다. 밀러 행성에서 한 시간이 지구에서는 7년이 된다는 설정.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 실제 물리학 현상이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블랙홀에 가까운 행성이라면 그 효과가 극단적으로 강해진다. 이 설정이 영화에서 쿠퍼와 머프의 이야기와 결합됐을 때,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라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감정적 비극으로 전환됐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상대성 이론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찾아봤다. 학교에서 이름만 들었던 개념인데, 인터스텔라를 통해 그게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복잡한 수식 없이 영화 장면을 통해 물리학의 핵심을 전달한 것, 그게 이 영화가 과학 교육의 관점에서도 특별하게 평가받는 이유였다.

킵 손은 이 영화 작업을 통해 얻은 성과를 묶어 책으로도 출판했다.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속 각 설정들의 과학적 근거를 설명한 책이다. 영화 하나가 물리학 대중화에 기여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책을 찾아본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인터스텔라가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이었다는 증거였다.


쿠퍼와 머프의 관계 인터스텔라가 SF이면서 가족 영화인 이유

인터스텔라를 SF 영화로 분류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은 우주 탐험이 아니라 아버지와 딸의 관계다. 쿠퍼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떠나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우주의 위험이 아니라 딸 머프를 잃는 것이었다. 그리고 머프는 아버지가 떠난 뒤 오랜 시간 동안 그 이별을 용서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는 쿠퍼가 밀러 행성에서 돌아와 23년치 영상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는 장면이다. 자신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화면 속 딸은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매튜 맥커너히의 얼굴에서 그 시간이 전부 읽혔다. 대사가 많지 않은 장면인데, 그게 오히려 더 강하게 전달됐다.

쿠퍼가 왜 떠났는지를 머프가 이해하는 과정도 이 영화의 핵심 서사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떠난 것을 버림받음으로 해석했던 머프가 성인이 된 뒤 아버지가 전한 데이터를 해석하면서 그것이 버려진 게 아니라 보호받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사랑이 시간을 넘어 전달될 수 있다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가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구현됐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성인 머프와 어린 머프(맥켄지 포이) 사이의 연속성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인물이라는 게 설득력 있게 느껴졌는데, 두 배우의 눈빛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 있지만 그 화 안에 사랑이 있는 눈빛. 캐스팅 과정에서 그 점을 신중하게 맞춘 것 같았다.

쿠퍼라는 인물이 설득력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영웅적인 동기보다 아버지로서의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보다 딸에게 돌아가겠다는 약속이 그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그 인간적인 동기가 이 영화를 우주 서사로만 읽히지 않게 하는 핵심이었다.


인터스텔라의 5차원 공간 설정 결말이 왜 그래야만 했는가

인터스텔라의 결말은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운 사람과 감동받은 사람이 갈렸다. 쿠퍼가 블랙홀 내부에서 5차원 공간인 테서랙트를 통해 과거 머프의 방과 연결된다는 설정. 물리학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전개였다. 그런데 이 결말이 영화 전체에서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이해하면 다르게 읽힌다.

영화 초반부터 머프의 방 책장에서 이상한 현상이 반복된다. 책이 떨어지고, 먼지가 특정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처음엔 그냥 유령 현상처럼 보이는 그것들이 사실 미래의 쿠퍼가 5차원 공간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에 놓인 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고 다시 보면 처음 장면들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5차원 존재들이 테서랙트를 만들었다는 설정에서 그 존재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영화는 그들이 미래의 진화된 인류일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지금의 인류가 과거의 자신을 구하기 위해 개입한다는 것. 단순히 외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하는 구조라는 해석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아이디어였다.

중력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힘이라는 설정, 그리고 사랑도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아만다(앤 해서웨이)의 대사가 초반에 나온다. 처음엔 과학 영화에 왜 갑자기 사랑 이야기를 끼워 넣나 싶었는데, 결말에서 그 대사가 실제로 영화의 핵심 메커니즘이 됐다는 게 드러났다. 쿠퍼가 머프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건 중력이라는 물리적 힘과 그 사이의 연결이 결합됐기 때문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전 세계에서 6억 7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고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개봉 10년이 지난 지금도 재개봉을 하면 극장이 찬다는 것, 그리고 IMAX 포맷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했지만 결국 이 영화가 말한 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것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릴 수 있는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히트맨 코미디와 액션이 만난 완벽한 균형

써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우정 이야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3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